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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 정신 도전, 나눔

만덕정신 도전

불우한 환경과 여성을 억압하던 시대의 한계에 굽히지 않고 불합리한 규범과 맞서 새로운 것에 과감히 도전하고 개척하여 자신의 이상을 실현한 김만덕

김만덕, 관습을 뛰어넘어 장사를 시작하다

양인으로 신분을 회복한 김만덕은 포구가 지닌 상업적 중요성을 미리 읽고 건입포구에서 물산객주를 차려 장사를 시작한다.

만덕의 장사 원칙

“싸게, 그러나 많이 판다”

만덕은 박리다매(薄利多賣), 곧 하나하나의 이익은 적게 보는 대신 많이 팔아서 큰 이익을 남기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기녀 생활의 경험을 살려 제주 양반집 부녀자나 기녀들에게 옷감, 장신구, 화장품 등을 싼 가격에 팔면서 그 양을 점차 늘려나가면서 큰 이익을 남겼다.

“알맞은 가격으로 사고 판다”

만덕은 정가매매(定價賣買), 곧 적정한 가격으로 사고파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큰 이익이나 눈앞의 이익을 보려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합리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적정가격으로 변함없이 상거래를 했다.

“정직한 믿음을 판다”

만덕은 신용본위(信用本位), 믿음을 바탕으로 거래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정직한 신용으로 철저하게 상거래를 했는데, 돈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직과 성실성을 기반으로 사업을 꾸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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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정신 나눔

만덕은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늘 검소하게 살면서 ‘풍년에는 흉년을 생각해 절약하고, 편안하게 사는 사람은 고생하는 사람을 생각해 하늘의 은덕에 감사하며 검소하게 살아야한다’는 생활철학을 실천하며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처음으로 부자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 여성으로 기려진다

기록으로 전하는 만덕의 기민 구휼

일성록

노기 만덕은 스스로 원하여 쌀 3백 석을 바쳤습니다.

채제공 「만덕전」

정조 20년 6월 6일 만덕이 천금을 내어 쌀을 육지에서 사들였다. 모든 고을의 사공들이 때맞춰 이르면 만덕은 그 중 십분의 일을 취하여 그의 가족을 살리고, 그 나머지는 모두 관가에 실어 날랐다.

이희발 「만덕전」

저축하였던 6백 곡(斛)을 내놓아 진휼(賑恤)하여 온 고을의 백성 열흘의 목숨을 연장시켰다.

만덕이 기부한 쌀의 가치

김만덕과 쌀

김만덕이 기부한 쌀은 3백 석이다. 이 곡식의 분량을 현재의 금액으로 환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쌀이 거의 생산 되지 않았던 당시의 제주도에 심각한 기근 현상이 닥쳐왔을 때 내놓은 곡식의 가치는 현재의 쌀 가격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만덕의 기부는 굶주려 죽어가는 제주도민 전체를 열흘 동안 연명시키고 수천 명의 백성을 살려낼 만큼 막대한 가치를 지녔다.